홍콩 누아르의 대가 왕가위 감독이 선보인 중경삼림(重慶森林, Chungking Express)은 독특한 구성과 감성적인 연출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인생 영화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빠르게 지나가는 도시의 풍경 속에서 천천히 흘러가는 감정의 속도를 조명한다. 두 가지 독립적인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사랑’과 ‘이별’, 그리고 ‘고독’을 다룬다. 등장인물 줄거리 감상평 ost등 영화에 대해 알아보았다.
1. 등장인물
1) 경찰 223번(금성무) : 젊고 감성적인 경찰로, 여자친구와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무너져간다. 그는 매일 유통기한이 다 되어가는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 모으며 그녀의 부재를 견딘다. 그의 사랑은 끝났지만, 그는 유통기한이 지나기 전까지는 그것을 놓을 수 없다.
2)금발 가발을 쓴 여인(임청하) : 미스터리한 마약 밀매업자. 선글라스에 금발 가발, 트렌치코트를 입은 모습은 도시 속 이방인처럼 보인다. 거래의 실패, 배신, 그리고 피로에 지친 그녀는 어느 날 우연히 223번과 만나며 잠시나마 일상의 피난처를 찾는다.
3)경찰 663번(양조위): 두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 카페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에 자주 들르는 단골 손님으로,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받고도 담담한 척 지내려 애쓴다. 그는 집에 남겨진 전 여자친구의 물건들과 대화를 하며 점점 고독에 잠식되어 간다.
4) 페이(왕페이) : 스낵바의 점원으로, 자유롭고 활기찬 성격을 지녔다. 663번을 몰래 짝사랑하게 되면서 그의 일상에 조용히 스며든다. 그녀는 그의 집에 몰래 들어가 청소를 하고, 집안을 조금씩 바꾸며 그의 닫힌 마음을 두드린다.
2. 줄거리
영화는 두 개의 이야기를 각각 따로 따라간다. 첫 번째 이야기는 4월 1일, 만우절에 시작된다. 경찰 223번은 여자친구에게 이별 통보를 받고, 매일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 모으며 그녀가 돌아오길 기다린다. 그는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1개월로 하자"며 스스로에게 기한을 정해 놓는다. 그날 밤, 그는 금발의 신비로운 여성을 만난다. 범죄 세계에서 상처 입은 그녀와 술집에서 조우한 뒤, 그들은 함께 밤을 보낸다. 사랑은 아니지만, 서로의 고독을 잠시 덜어주는 만남이다. 그리고 새벽, 각자의 길로 돌아간다.
두 번째 이야기는 스낵바 점원 페이와 경찰 663번의 이야기다. 페이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다가 점점 더 관심을 갖게 되고, 그의 집 열쇠를 몰래 얻어 집 안을 청소하고, 소소한 변화를 준다. 663번은 처음엔 이를 눈치채지 못하지만, 점차 변화를 감지하며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그러나 페이는 갑자기 떠나버리고, 1년 뒤 돌아왔을 때 두 사람은 다시 새로운 관계의 시작점에 선다.
3. 감상평
중경삼림은 줄거리보다 '감정'으로 기억 되는 영화다. 빠른 도시 속에서 천천히 감정을 품는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누구를 기다리고 있나요?" 왕가위 감독의 독특한 연출 방식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순간적인 감정의 떨림을 극적으로 보여준다.누구나 한 번쯤 느꼈을 ‘스쳐가는 인연’ 단순히 로맨스 영화로 보기엔 너무 섬세하고, 도시 영화로 보기엔 너무 시적이다. 사랑은 오고, 이별은 지나가고, 사람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문다. 그 모든 시간이 모여 하나의 기억이 된다. 이 영화는 그 조용한 기억의 틈을 우리에게 내민다. 또한 왕페이의 자유로운 에너지와 양조위의 고요한 슬픔은 묘한 대비를 이루며, 관객의 마음을 서서히 적셔간다. 극적인 사건보다는 작은 감정의 변화, 인물들의 미묘한 눈빛과 몸짓에 집중한 연출이 인상 깊다.
4. OST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은 음악이 인물의 대사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는 작품이다. 고독, 기다림, 스쳐가는 인연, 그리고 미처 끝맺지 못한 감정들이 배경 음악을 타고 조용히 흘러나온다. 이 영화가 유독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 감정을 완성시키는 OST에 있다.
1) California Dreamin' – The Mamas & The Papas
"All the leaves are brown, and the sky is gray…"
이 곡은 영화 속에서 수차례 반복되며, 페이의 자유로운 영혼을 대변한다. 스낵바에서 혼자 춤을 추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도시라는 굴레 속에서 탈출을 꿈꾸는 현대인의 자화상처럼 다가온다. 익숙한 멜로디는 홍콩의 좁은 거리와 반짝이는 네온 불빛 사이에서 더욱 인상 깊게 들려온다.
2) 夢中人 (몽중인) – 왕페이
페이가 몰래 경찰 663번의 집에 들어가 청소를 하며 그의 일상에 스며드는 장면에서 흐르는 곡이다. 광동어로 부른 이 노래는 “꿈속에서 본 너”라는 가사를 통해, 그녀의 짝사랑과 설레는 감정을 고스란히 전한다. 몽환적인 선율은 화면 속 흐릿한 조명, 느릿한 슬로우 모션과 어우러져 마치 하나의 감정처럼 느껴진다.
3) Dreams – The Cranberries
왕페이의 《몽중인》의 원곡이기도 한 이 노래는 영화의 후반부, 페이가 다시 돌아온 장면에서 흘러나온다. 떠난 이가 다시 돌아오고, 이전과는 조금 다른 거리감으로 서로를 마주하는 두 사람. 그 사이에 흐르는 ‘Dreams’는 그들이 아직도 서로를 꿈꾸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미완의 감정이 이어지는 순간, 노래는 그 감정의 무게를 덤덤히 감싸준다.
4) Things in Life – Dennis Brown
663번은 이별한 연인의 물건들과 혼잣말을 하며 마음의 정리를 시도한다. 그 순간 흘러나오는 이 레게 음악은 쓸쓸하면서도 어딘가 편안하다. 무엇을 붙잡고 있고, 또 놓아야 할지를 모르는 사람의 마음. 그 불안함을 이 곡은 천천히, 그리고 관조적으로 그려낸다.
5) What a Diff'rence a Day Made – Dinah Washington
"하루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는 이 고전 재즈 곡은 영화의 잔잔한 장면들과 어우러져 깊은 여운을 남긴다. 사랑은 사라지고, 일상은 다시 시작된다. 그 평범한 시간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다시 살아간다. 이 곡은 그런 하루하루의 감정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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